IT인들이 대접받던 시절

어제 오랜만에 대학원 동기들과 담소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저의 동기들은 저보다 나이도 많고, IT 업계의 선배들로서 IT 경력이 보통 20년 가량됩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한국 IT의 역사를 듣는 것 같습니다. 보통 옛날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데 어제는 우연하게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한국 IT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들 추억에 잠겼고, 너무나 들뜬 나머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몇 가지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가운입고 근무한 IT 인들
그 시절 전산실에서 근무한 IT인들은 지금 의사 가운 같은 것을 입고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반도체 생산라인처럼 먼지에 대해 민감해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나름의 유니폼이었으니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세요?
 
2) 하드디스크가 고장 나면 망치로
외국계 IT 기업에 다니는 분의 이야기로 그 시절 하드디스크는 지금의 1U 정도의 서버만 했고, 이게 자주 고장을 일으켜 갈아 끼우는 것이 큰 일이었다고 합니다. 가끔은 하드디스크가 동작 안 할 때 망치를 가지고 때리면 돌아갔다고 하네요. 컴퓨터도 그러는데 하드디스크도 그랬다니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인 것 같습니다.


3) IT인들과 천공입력 직원과의 로맨스
그 시절 컴퓨터는 보통 천공테이프를 가지고 프로그래밍을 한 시절입니다. 금융권 전산실의 경우 대부분 이런 천공입력을 전문으로 하는 직원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여자였다고 하네요. 전산실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을 해서 들고 오면 자주 얼굴을 보게 되었고, 천공입력 담당자에게 잘 보이면 먼저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특히나 대형 금융권으로 파견 나간 글로벌 IT 기업의 직원들이 이런 천공입력을 전문으로 하는 여자분들과의 로맨스가 많았고, 결혼까지 골인한 커플들이 주위에도 여럿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죠? ^^


4) 전산실을 사수하라
요즘은 전산실 시설이 잘되어 있어, 화재 및 습도, 여러 재해로부터 안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전문 지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시설도 열악했다고 합니다. 동기 중 한 분이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 그때 홍수가 나서 배수관으로 물이 역류하고, 천정에서는 물이 세고 전산실의
 최대 위기가 닥쳤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배수관 옆을 새롭게 파서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석유 넣는 펌프로 퍼내고 직원들을 총동원하여 물 퍼내고, 배선은 최대한 높이고 완전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상상할 수도 없는 해프닝인 것이죠. 그러나 그 에피소드의 압권은 그런 물난리에는 잘 버텼는데, 건물의 스프링쿨러 설계가 잘못되어 전산실 위에 하나가 들어와 있었고, 이게 테스트하다가 터져 컴퓨터가 죽어버렸다는 웃지 못할 사연이었답니다.
 
불과 10~2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그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IT 인들은 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었고, 특별한 기술 보유를 인정하고, 대접 받는 직종이었다는 것이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인 것 같습니다. 내년 IT 업계는 핵빙하기가 도래한다고 합니다. 감원과 정리해고의 바람이 우리 IT 업계에도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도 IT를 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영광은 아니더라도 IT 인들을 바라보는 인식만큼은 이번 핵빙하기를 거치면서 개선되어야 기간산업으로서 IT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IT인들의 봄은 언제 올까요? 다시올 수 있을까요?

그림출처 : http://royal.pingd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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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gle's Openr 2008-11-13 13:09:59
전산실의 옛 영광을 되살리려면...
네오비스 님의 블로그에 'IT인들이 대접받던 시절'을 읽고 나름 내 생각을 정리해봤다. 그 시절 '전산'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아주 특수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1980년대 초등시절이었던 나는 '컴퓨터'하면 '로보트'를 연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전산실 직원들은 아주 대단한 기술자로 여기고 대우해줬던 ...............그런 시절이...

5throck 2008-11-11 16:03:50     답글 삭제
꼭 다시 오리라 생각합니다... ^^
네오비스 2008-11-11 21:52:41     삭제
네.. 저도 그랬으면 합니다. ^^

오픈검색 2008-11-11 16:46:45     답글 삭제
과거에는 흐믓한 이야기가 참 많았군요.
현실이 암울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버려서는 안되겠지요^^
네오비스 2008-11-11 21:53:11     삭제
희망은 버리지 않습니다만 그 터널의 끝이 어디일지 조금은 답답해 지네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죠 ^^

fgdg 2008-11-11 19:02:09     답글 삭제
오로지 삽과 땅만 있을뿐
it도 삽을 소재로 삼아야
쥐님이 좋아하심

용쟁호투 2008-11-12 09:02:49     답글 삭제
윈도우가 출시되면서 컴퓨터가 가전제품이 되었던거지요...윈도우이전에 업무용 시스템개발자는 정말 대접 잘받았는데요...

지나가다 2008-11-12 10:48:14     답글 삭제
천공입력이라...
컴터에 천공입력하던 시절은..
20년전 제가 대학에 입학해서 FORTRAN 수업 듣으며 가지고 놀던 학교 대형컴터가 등장하기 전의 시절인듯한데요..
그때 수업시간에 들었던 컴터 역사에서 10수년전에는 천공입력이란걸 했었다는 전설이 있었다던데..
그때의 이야기인가요..;
테트리스가 전세계 게이머를 사로잡고 3차원 테트리스등의 변종 테트리스가 등장하던 20년전에 천공입력을 했었다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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